여행 중 우리는 흔히 낯선 풍경과 음식을 떠올리지만, 때때로 더 깊은 울림은 사람들의 ‘삶의 순간’에서 찾아온다. 나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장례식, 결혼식, 생일파티를 마주했고,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들이 슬퍼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는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의도하지 않은 이 만남들은 그 사회의 리듬, 공동체의 온기, 인간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그것이 오히려 내 여행의 본질이 되었다.
1. 태국 치앙마이에서 마주한 장례식
치앙마이의 오래된 사원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한적한 골목을 따라 걷고 있었고, 낮게 드리운 해가 만들어낸 사원의 지붕 그림자가 나무 사이로 번지고 있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향 냄새와 함께 잔잔한 불경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처음엔 그저 예불 시간인가 보다 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복장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갈하게 앉아 있었고, 앞쪽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곳이 장례식이라는 걸 알아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외국인인 내가 이 공간에 머무는 것이 혹시 방해가 되진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몇몇 현지인들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자리를 안내해 주었고, 나는 사원의 기둥 옆에 조용히 앉게 되었다. 울음소리는 없었다. 통곡도, 흐느낌도 없었다. 대신 전체 공간을 감싸는 건 깊은 침묵과 경건함이었다. 바람이 불면 천이 가볍게 흔들리고, 향이 피어오르고, 승려의 낮은 목소리가 천천히 이어졌다. 아이들도 함께 앉아 있었고, 젊은 남녀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동그랗게 모여 그 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인의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은 채 오랜 시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안에서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한국과 참 다르다는 걸 느꼈다.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기억을 함께 기리는 태도. 그것은 죽음을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자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한국에서 장례식을 검은색과 눈물로 기억하지만, 이곳은 흰색의 옷과 햇살, 향기, 그리고 따뜻한 침묵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약 한 시간가량 머물렀지만, 체감으론 훨씬 더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춘 것처럼 고요했고, 그 속에서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며 작은 향을 고인의 사진 앞에 놓고 나아갔다. 나는 따라 하지 않았다. 대신, 그저 고개를 숙였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그건 고인을 향한 인사이기도 했고, 내가 우연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그날의 경험은 치앙마이의 화려한 사원보다, 멋진 전망보다도 훨씬 더 오래 내 안에 남았다. 여행이란 꼭 무언가를 보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의 삶의 끝을 조용히 함께 지켜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날 그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2. 포르투갈 리스본의 결혼식
리스본에서의 어느 날, 단지 골목을 산책하던 평범한 오후였다. 낮은 언덕을 오르다 바다를 향해 열린 풍경을 따라 걷고 있는데, 멀리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거리 공연인가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성당 앞 광장이 하얀 꽃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사이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햇살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그 공간 전체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성당 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단지 초대한 하객만이 아니었다. 근처 상점 주인, 지나가던 사람들, 심지어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들까지 함께 박수를 치며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결혼식은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되기보다는 마치 거리 축제처럼 활기찼다. 꽃을 던지고, 악기가 연주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풍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결혼식과는 너무도 달랐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이 시간표에 맞춰 깔끔하게 진행되고, 일정한 포맷 속에서 축복이 전달되는 반면, 이곳에서는 축복이 형식이 아닌 분위기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누구의 결혼식’이라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함께 웃고, 모두가 사진을 찍고, 모두가 와인을 기울이는 그 순간에는 마치 이 동네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가족이 된 듯했다. 신부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포르투갈어로 무언가를 외치며 울었고, 어떤 노인은 손주와 함께 박수를 쳤고, 또 다른 이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함께 응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카메라보다 눈으로, 음악보다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광장 옆 벤치에 조용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방인이었지만, 이 축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결혼식은 단지 두 사람의 사랑을 맹세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연대의 시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순간,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결혼식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여행의 중심이 되었고, 지금도 나는 그날 오후의 햇살과 음악, 그리고 광장의 웃음소리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3. 멕시코 오악사카의 생일파티
멕시코 오악사카(Oaxaca)에서의 어느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호스텔 마당 한쪽에서 분주하게 뭔가를 꾸미는 모습이 보였다. 풍선이 매달리고,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케이크와 접시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묘한 설렘이 가득했다. 처음엔 단순한 이벤트인 줄 알았지만, 스태프 중 한 명의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초대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스태프는 나를 포함한 모든 여행자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같이 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거리감이 사라졌고, 이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생일파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날 파티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피냐타를 준비했다.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피냐타를 부수며 다 같이 웃고 떠드는 그 분위기는 정말 특별했다. 우리는 서로 이름도 잘 모르고, 언어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모두가 한 사람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 생일을 조용히 보내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곳 사람들에게 생일은 단순히 나이 먹는 날이 아니었다. ‘한 해를 잘 살아냈다는 사실에 대한 축하’였고, 동시에 ‘당신이 오늘 여기 존재해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담은 자리였다. 특히 생일 주인공이 손님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두에게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날, 생일이라는 날이 누군가에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웃는다는 것, 낯선 사람들과 피자 한 조각을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삶을 즐기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며 수많은 명소를 봤지만,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 건 늘 이런 작고 사적인 순간들이었다. 떠나온 지 오래된 나라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런 생일 밤에 함께 웃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날 이후 나는 생일을 이전보다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누군가의 기념일에 조금 더 따뜻하게 인사하려고 한다. 그건 여행에서 배운 새로운 태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날 오악사카의 마당에서 들려오던 기타 소리와 웃음소리를 문득 떠올린다. 삶이 꼭 특별한 무대 위에서만 빛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렇게 평범한 날의 축하 속에서 배웠다.
결론
우연히 마주한 장례식에서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고, 거리에서 열린 결혼식에서는 공동체가 기쁨을 나누는 방식을 보았으며, 어느 생일파티에서는 타인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일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여행이란 단순한 구경이나 풍경 감상이 아니라, 때론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을 함께 살아보는 일이었다. 이런 순간들은 언어도, 국적도 초월해 우리 모두가 비슷하게 웃고, 울고, 축하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오히려 인간다운 온기를 가장 진하게 마주했고,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조용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