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이라고 하면 대도시부터 떠오르지만, 진짜 유럽을 만나고 싶다면 소도시로 향해야 한다. 관광지의 틀을 벗어나 현지인의 삶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도시 여행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글에서는 유럽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조용한 로컬 소도시 3곳, 프랑스 콜마르,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를 소개한다.
1. 프랑스 콜마르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에 위치한 콜마르(Colmar)는 흔히 ‘동화 속 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소도시이지만, 실제로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단번에 느끼게 된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차로 약 30분, 바젤에서도 가까운 이 도시는 독일과 프랑스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답게 독특한 알자스 양식의 목조 주택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으며, 창문마다 꽃이 만발하고 지붕은 낮고 색감은 따뜻하다. 도시의 중심은 '작은 베니스(Petite Venise)'라고 불리는 운하 지구로, 낮에는 햇살이 수면 위에 반사되고, 저녁에는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 골목이 낭만으로 가득 찬다.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오전 시간, 또는 저녁 무렵에는 마치 중세 시대의 유럽을 혼자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콜마르의 장점은 대도시의 소란스러움이 없다는 점이다. 거리에 차가 거의 없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느리게 걷는다. 도시의 크기가 작아 반나절이면 주요 명소는 다 둘러볼 수 있지만, 진짜 콜마르의 매력은 천천히 걷는 그 ‘사이사이’에 있다. 오래된 제분소, 골동품 서점, 작은 미술관, 그리고 100년이 넘은 제과점까지 구석구석에 로컬 감성이 살아 있다. 특히 수공예 시장이나 현지 와이너리는 작지만 정성스럽고, 관광객에게도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고품질의 지역 특산품을 판매한다. 콜마르는 알자스 와인 루트의 핵심 지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근교 포도밭 투어나 와인 시음 투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여행자들은 종종 자전거를 대여해 근처 마을인 에기세임(Eguisheim)이나 리크비르(Riquewihr)까지 당일치기 투어를 떠나기도 하는데, 이런 이동조차도 이 지역의 고즈넉한 정취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프랑스 내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행사로, 목조 상점에 진열된 수공예 장식품과 향신료 와인의 향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그 반면, 비수기인 10월과 3월 사이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콜마르를 만날 수 있어 ‘나만 알고 싶은 유럽’ 같은 느낌이 든다.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을 곁들이며 아무런 목적 없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 콜마르는 분명 화려하진 않지만, 여행자에게 가장 따뜻한 감정을 남겨주는 도시다.
2.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에 위치한 오르비에토(Orvieto)는 단 한 번의 첫인상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도시다. 로마에서 기차로 약 1시간 30분, 피렌체에서 약 2시간 거리로 비교적 접근성이 좋지만, 기차에서 내린 뒤 도시를 올려다보면 이곳이 왜 '절벽 위 도시'라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된다. 거대한 응회암 절벽 위에 자리한 오르비에토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듯한 지형 덕분에 중세의 고요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내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푸니쿨라(산악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이 짧은 오르막 이동조차도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중심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오르비에토 두오모가 우뚝 서 있다. 외벽의 모자이크와 조각은 햇살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천장부터 벽까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시 전체는 차량 진입이 거의 제한되어 있어 걷는 여행자에게 최적화되어 있고, 어느 골목이든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상점과 식당은 대부분 로컬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업장이며, 이곳에서 판매되는 치즈, 와인, 수공예 도자기 등은 움브리아 지역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오르비에토는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화이트 와인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 와이너리 투어는 여행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절벽 끝 전망대에 서면 움브리아 전역의 들판과 언덕이 끝없이 펼쳐지며, 이 장면은 사진보다 눈으로 직접 봐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한편, 도시 지하에는 고대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이어진 석회암 동굴과 비밀 통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가이드 투어를 통해 이 '오르비에토 지하 도시'를 탐험할 수 있는 체험도 특별하다. 혼잡한 로마나 피렌체와는 전혀 다른, 고요한 시간의 결이 흐르는 이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이질감과 동시에 마음이 정돈되는 감각이 찾아온다. 여행자가 많지 않은 계절엔 골목을 혼자 거닐 수 있고, 현지 카페에서는 이웃들이 나누는 이탈리아어 속삭임이 그대로 배경음이 된다. 오르비에토는 많은 이탈리아 도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조용함 덕분에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여행지다. 기차로 쉽게 갈 수 있지만, 한 번쯤은 일부러 오래 머물고 싶은 곳, 하루하루가 깊이 스며드는 마을이다.
3.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오스트리아 할슈타트(Hallstatt)는 그림엽서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전 세계 여행자의 로망이 된 마을이지만, 그 진짜 매력은 단순히 풍경이 아닌 마을 전체의 구성과 흐름, 그리고 도착하는 방식에 있다. 잘츠부르크나 빈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면, 여러 번 환승을 거쳐 도착하는 이 작은 마을은 그 자체로 ‘도착의 여운’을 느끼게 만드는 장소다. 특히 기차에서 내린 뒤, 작은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코스는 평범한 여행이 아닌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각적인 순간을 제공한다. 할슈타트는 호수와 산 사이의 아주 좁은 지형 위에 세워져 있어, 마을 전체가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길이 복잡하지 않아 걷는 여행에 최적화되어 있다. 첫눈에 들어오는 붉은 지붕의 가옥들과 목조건물,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구불구불한 골목들은 마치 유럽 중세 마을 미니어처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심 광장에는 작은 카페와 기념품 상점, 교회, 그리고 전망대까지 모두 도보 5분 거리 안에 있으며, 마을 위쪽으로 오르면 ‘월드 헤리티지 뷰(World Heritage View)’라는 전망대가 있어 할슈타트 호수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사진으로 수천 번 접한 풍경이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서면 수면 위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함께 움직이며 마치 살아 있는 수채화 같은 인상을 남긴다. 할슈타트는 한때 염전과 소금광산으로 번영했으며, 지금도 소금광산 체험을 할 수 있는 ‘잘츠베르크 소금광산(Salzwelten)’은 가족 단위 여행자에게 인기가 많다. 골목 끝에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는데, 한정된 땅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해골 박물관’이 있어 독특한 문화적 경험도 가능하다. 할슈타트는 관광객이 많지만, 숙소를 마을 안쪽에 잡고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를 활용하면 훨씬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비 오는 날, 운무가 내려앉은 마을은 한층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름철에는 호숫가에서 수영이나 보트 타기, 겨울에는 눈 덮인 산과 반짝이는 조명이 어우러진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려 사계절 모두 매력이 다르다. 마을 전체가 ‘관광지’로 소비되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빨래가 널려 있는 가정집 발코니,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는 현지인의 모습 속에서 할슈타트가 단지 아름다운 풍경 그 이상임을 깨닫게 된다. 빠르게 스쳐가는 일정보다 하루 이상 머물며 그 변화를 천천히 마주하는 것, 그것이 할슈타트를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다.
결론
콜마르의 알록달록한 골목, 오르비에토의 절벽 위 고요함, 할슈타트의 호수 위 풍경처럼, 유럽 소도시 여행은 빠르게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며 ‘느끼는’ 방식의 여행이다. 대도시의 화려함보다 사람 사는 온도가 느껴지는 곳에서 우리는 진짜 유럽의 시간을 만난다. 삶의 속도를 낮추고 싶다면, 다음 여행은 이 조용한 마을들로 향해보자. 그곳에서 비로소 나를 쉬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