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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즈 클럽 피트 인, JZ Brat, 재즈 온 탑

by AshleyK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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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깊이 있는 재즈 문화를 가진 나라다. 단순한 분위기 이상의 진심이 오가는 곳, 도쿄와 오사카의 재즈 클럽들은 연주자와 청중이 같은 호흡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도쿄 신주쿠의 피트 인, 시부야의 JZ Brat, 오사카 우메다의 재즈 온 탑. 이 세 곳은 전공자의 눈으로 보아도 특별한 울림을 주는 무대였다. 공간, 음악, 청중의 온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일본 재즈의 정수를 담았다.

일본 거리

1. 일본 재즈 클럽 피트 인

도쿄 신주쿠 한복판, 화려한 네온사인이 넘실대는 번화가 뒤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그 열기에서 벗어난 듯 조용한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신주쿠 피트 인(Pit Inn)이다. 1966년 개업 이후 일본 재즈의 산실로 불려 온 이곳은, 외관만 보면 단정하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서는 무수한 전설과 즉흥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피트 인을 찾기 전부터 이곳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계단을 내려가 입구를 지나 무대가 펼쳐지는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내 상상보다 더 ‘집중된’ 분위기가 몸을 감쌌다. 조명은 어둡고 무대는 낮았으며, 관객들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분위기’가 아닌 ‘음악’ 자체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일본 로컬 재즈 트리오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피아노, 더블베이스, 드럼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트리오는 첫 곡으로 'Witch Hunt'(Wayne Shorter)를 선택했다. 피아니스트는 도입부를 원곡보다 훨씬 느리고 무겁게 시작했고, 그의 보이싱은 사운드를 조밀하게 감싸는 대신 '공간을 열어두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rest space phrasing’과 흡사한 스타일이었다. 베이스는 워킹이 아닌 2-feel로 깔리다가 점차 스윙으로 전환되었고, 드럼은 라이드 심벌 대신 사이드 스네어를 활용해 리듬을 조밀하게 엮어냈다. 곡이 전개되며 솔로가 이어졌을 때, 관객들은 박수조차 치지 않고 집중했고, 한 음 한 음이 명상처럼 공간을 채웠다. 이건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심리적 거리는 더 좁았다. 특히 이곳에서의 ‘청중’은 굉장히 훈련되어 있었다. 솔로가 감정적으로 치닫는 구간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연주의 마디가 전환될 때 따라 움직이는 손짓 하나하나에서 그들이 얼마나 이 음악을 잘 알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UNT에서 combo 수업에서 연주할 때 청중 반응을 통해 연주의 방향을 바꾼 경험이 있었는데, 피트 인에서는 그 느낌이 극대화되었다. 연주자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깊이 교감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연주자의 CD와 굿즈가 진열되어 있었고, 몇몇 청중은 연주자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피아니스트에게 리하모니제이션 과정에서 그가 사용한 보이싱 접근법을 물었고, 그는 차분히 답하며 "공간이 허락할 때만 tension을 넣는다"라고 말했다. 이 대답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가 공부하며 익히는 코드 이론, 보이싱 기술, 리듬 해석은 결국 '침묵과 타이밍'이라는 보다 섬세한 감각 위에 존재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신주쿠 피트 인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연주자가 가장 날것의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장소이며, 청중 역시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경청으로 응답하는 공간이다. 일본 재즈의 미학, 즉 ‘과하지 않음’, ‘공간을 존중함’, ‘절제 속의 표현’이 이 작은 클럽 안에 오롯이 녹아 있다. UNT에서 배운 많은 이론이 이 공간에서 한순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도쿄에서 단 한 곳의 재즈 클럽을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단연 피트 인을 꼽겠다. 그곳은 단순한 라이브하우스가 아니라, 재즈라는 음악의 본질을 체험할 수 있는 일본 재즈의 성소였다.

2. 도쿄 시부야 JZ Brat

도쿄 시부야 근처의 한 고급 호텔 건물 내에 위치한 ‘JZ Brat Sound of Tokyo’는 깔끔하면서도 묵직한 음악적 진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세련된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고, 넓고 정돈된 좌석 구조가 인상적이다. 고급 레스토랑과 공연장이 결합된 형태지만, 이곳의 중심은 단연 ‘재즈 그 자체’다. 소리 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된 내부 음향 시스템은, 연주자들의 디테일을 온전히 전달해준다. 무대는 객석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찾은 날은 하드밥 색소폰 콤보가 무대에 섰고, 첫 곡으로 선택한 'Yes or No'는 원곡의 테마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리듬 해석이 돋보였다. 드러머는 왼손으로만 리듬을 조절하며 리드했고, 베이시스트는 단순한 워킹라인 대신 반복적 리프를 통해 곡을 설계해나갔다. 피아노는 테마의 모티프를 따르지 않고, 마치 보컬처럼 멜로디를 떠다니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리듬섹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말하던 ‘박자를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연주’ 그 자체였다.

JZ Brat의 관객층은 다양했다. 정장을 입은 중년 직장인, 편하게 앉아 와인을 즐기는 커플, 재즈 마니아로 보이는 혼자 온 관객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재즈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인 태도는 하나, 바로 ‘집중력’이었다. 박수는 조용히, 반응은 깊이 있게. 공연이 진행될수록 공간은 점점 ‘소리의 온기’로 차올랐고, 나는 어느새 그 안에서 ‘듣고, 분석하고, 감동받는’ 세 가지 상태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자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피아니스트에게 텐션의 전개 방식에 대해 물었고, 그는 “여기선 코드보다 공기의 흐름이 중요해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 말 한마디가 JZ Brat이라는 공간을 정확히 표현해주었다. 단지 ‘연주를 듣는 곳’이 아니라, ‘연주가 퍼지는 공기까지 느끼게 하는 곳’인 것이다.

JZ Brat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격이 있고, 무대 위 연주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진짜 재즈 공간이다. 도쿄에서 재즈를 단단하고 품격 있게 경험하고 싶다면, 나는 이곳을 반드시 추천할 것이다.

3. 오사카 재즈 온 탑

오사카는 일본에서도 문화적으로 개방적이고 유쾌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쿄에 비해 사람들의 감정 표현이 더 솔직하고, 예술 장르도 좀 더 대중과 가까운 거리에서 숨 쉬고 있다. 그런 오사카에서 내가 찾은 재즈 클럽은 ‘Jazz on Top’이다. 우메다역 근처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이 클럽은, 외관상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입구를 지나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간 전체가 직사각형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석이 둘러싸여 있고, 무대는 매우 낮으며 연주자와 청중 간 거리가 거의 손 뻗으면 닿을 정도다.

내가 찾은 날은 여성 보컬 중심의 퀸텟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보컬, 피아노, 더블베이스, 드럼, 그리고 테너 색소폰으로 구성된 이 팀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You Don’t Know What Love Is’를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풀어내며 공연을 시작했다. 원곡의 느린 발라드 구조를 완전히 비틀어 리듬을 단조롭게 나누고, 6/8 템포 위에 아방가르드한 코드 보이싱을 얹어냈다. 내가 학교 과제 때 시도해 보았던 비전통적 리하모니제이션 기법과 굉장히 유사했으며, 청중 반응은 의외로 아주 따뜻했다.

연주자들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무대의 밀도였다. 공간이 좁아 사운드가 흩어지지 않고 응축되어 관객의 귀에 직격으로 닿았다. 드러머는 스네어와 킥 드럼 사이의 거리감을 세밀하게 조절하며 groove를 잡았고, 피아니스트는 중음역대를 과감히 비우고 보이싱을 펼쳐, 보컬이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들게 했다. 색소폰 연주자는 강한 vibrato 없이 플랫한 톤으로 테마를 이끌었는데, 이 절제미가 오히려 긴장감을 주었고, 그 속에 숨은 감정을 청중이 더 깊이 느끼게 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소규모의 청중들이 연주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음료를 들고 무대 가까이 다가와 질문하거나 감상을 말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나는 피아니스트에게 편곡적인 부분에 대해 물었고, 그는 "우리는 일부러 재즈보다는 좀 더 연극적인 서사 구조로 해석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재즈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그리고 일본의 연주자들이 이 음악을 어떻게 자기식으로 풀어내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 순간이었다.

오사카라는 도시 특유의 따뜻함, 사람들의 유쾌한 에너지,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관대한 시선이 이 클럽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서는 연주자와 청중이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공연을 '만든다'. 그런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Jazz on Top'은 단순한 라이브 하우스를 넘어 오사카 재즈 커뮤니티의 심장이라 불릴 만하다.

결론

일본의 재즈 클럽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와 사람, 감정이 엮이는 하나의 살아있는 장면이다. 신주쿠 피트 인은 정통성과 긴장감, JZ Brat은 품격 있는 사운드와 공간의 깊이, 재즈 온 탑은 젊고 실험적인 에너지로 각기 다른 결을 보여준다. 전공자로서, 청취자로서, 그리고 여행자로서 이 공간들을 경험한다는 건 ‘재즈는 언어를 넘어선 교감’이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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